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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

이연옥(지니) 2014. 6. 3. 11:43

줄탁동시(啐啄同時)

출처/http://kr.blog.yahoo.com/topven


어미가 품에 안은 알 속에서

조금씩 자란 병아리가 있다.

이제 세상 구경을 해야 하는데

알은 단단하기만 하다. 병아리는

나름대로 공략 부위를 정해 쪼기

시작하나 힘이 부친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은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 준다.

답답한 알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아리는 비로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줄啐」이라 하고

밖에서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탁啄」이다.

그리고 이 일이 동시에 발생해야 어떤 일이 완성된다는 것이

「줄탁동시」啐啄同時이다.

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가르침이자 매력적인 이치가 아닐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은 부부(夫婦)가「줄탁동시」할 때 이루어 지고

훌륭한 인재는 사제(師弟)가「줄탁동시」의 노력을 할 때 탄생하며

세계적인 기업은 노사(勞使)가「줄탁동시」할 때 가능한 것이다.

또한 국가의 번영이나 남북관계 그리고 국제관계에도

「줄탁동시」의 이치를 공유하고 함께 노력할 때

성공과 발전이라는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줄탁동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 첫번째는「내가 먼저 변화하기」이다.

어느 방송국의 로고송에 있듯이 세상의 이치는

“기쁨주고 사랑받는” 순서이지 "사랑받고

기쁨주는" 순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상대로부터 화답이라는 선물을 받으려면

고뇌와 헌신이 듬뿍 담긴 변화와 혁신을

통해 기뻐할 일을 만들어 내야한다.

가정이라면 배우자가 기뻐할 일을 준비하여야 하고

기업이라면 새로운 혁신가치를 먼저 만들어 내야

시장의 열광이 따르는 것이다.

두번째는「경청」이다.

어미닭이 아기 병아리가 부화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려면

또 어느 부위를 두드릴 것인지를 먼저 시그널(signal)을 잘 듣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병아리에게 필살의 도움을 줄 수가 있고, 함께 기쁨을 만들 수 있다.

가족의 소리, 고객의 소리,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으면 위대함이란 없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선물을 받는 것과 같다.” 말이 있다.

경청하지 않는 것은 받은 선물을 아무렇게나 뜯어 던져두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에게 누가 다시 선물을 주겠는가

세번째는「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변화와 혁신이라도

상대방이 갈망하고 있는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일은 낭패를 본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고객가치에 소비자들이 목말라할 때,

혁신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시장과 고객이 보내오는 열광과 감동의 화답을 받을 것이다.

위대한 조직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과 함께 손을 맞춰 박수를 칠 수 있는 기업”일 것이다.


네번째는「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나의 노력이 항상 인정을 받아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의 안쪽을 쪼았다고 반드시 상대방이 바깥쪽을

쪼아주는 것은 아니다어느 경우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상대방의 묵묵부답으로 온갖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

기업의 경우, 필살의 노력으로 새로운 제품을 내었다해도

늘 히트상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묘는 기다림에 있다.

고객과 함께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만들기 위해 늘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과 밖, 명과 암, 나와 너…

이 두 가지가 만나 새로운 열정과 에너지를 창조하는 원리.

「줄탁동시」啐啄同時로 세상사는 법을 더 생각해 봐야겠다.



<글.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센터 강신장 상무>



* 줄탁동시(卒啄同時)에 대하여 *


선불교에 있어 대표적 선문답서인 벽암록(碧巖錄) 제16칙에
卒啄(줄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본래 “卒啄同機(줄탁동기)” 라는 사자성어로
중국의 민간에서 쓰이던 말이었는데, 송(宋)나라 때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인 벽암록(碧巖錄)에
공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으며
줄여서 "줄탁"(卒啄)이라고도 합니다.

쪼을 줄(卒), 쪼을 탁(啄).
줄과 탁을 통하여 병아리가 제때 부화하듯 적절한 시기에
줄탁을 통해 어떤 일이 완성됨을 뜻하는 것으로
불가의 중요한 화두가 된 “卒啄同機(줄탁동기)”
또는 "卒啄同時(줄탁동시)" 라는 말의 의미는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개 되는데 이것을 '줄(卒)' 이라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啄)'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줄탁(卒啄)"은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껍질 안의 병아리가 힘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껍질 바깥 어미 닭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겠지요.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는 결국 이 세상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스승이 제자를 지도하여
적시에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줄탁동시」가 이루어질 조건들은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는 "적극성"입니다.
즉 내가 먼저 완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계획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을 것입니다.

그 두 번째는 "준비성"입니다.
즉 완성을 위해 준비하고 경청하고 대비하는 자세로
어디서 무슨 소리가 언제 어떻게 들려올 것인가에 대해
시그널(signal)을 잘 살피는 자세야 말로 "줄탁동시"의
핵심조건입니다.

기다리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합니다.
교육자라면 그것이 적극적인 스승의 자세일 것이고,
배우는 제자라면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며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그 세 번째는 "적시성"입니다.
즉, 완성을 위한 타이밍(timing)이 맞아야 합니다.

위의 두 조건 즉 "적극성"과 "준비성"이 갖추어졌을지라도
적시(timing)에 행하지 않으면 완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기다릴 때 기다리고, 할 때 행하는 것이 적시성이며
행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 네 번째는 "관계성"입니다.
즉 하나가 아닌 둘이상의 개체들간 어떤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의 의지를 품고 있을 때 줄탁(卒啄)은
일어납니다.

그것이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사이든 또는
서로 섞여있는 관계이든 간에 "줄(卒)"하고 "탁(啄)"할
상대방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합니다.

연인, 부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기업과 고객, 정치와 국민, 국제간의 관계 등등----.

이 모든 개체들이 상호 어떤 관계 하에서 줄탁동시 했을 때,
또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서로에게 다가설 때 비로소
어떤 일이 성사되고 그 일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 다섯 번째는 "동시성"입니다.
즉 "줄"과 "탁"이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卒啄同時(줄탁동시)의 묘는 기다림에 있습니다.
서로 "줄"과 "탁"이 필요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만들기 위해 늘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줄"과 "탁" 이 한날한시에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거나
위에서 말한 네 조건들이 모두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그런 획일적인 의미의 동시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생각하고 행동함을 뜻하는
"卒啄同時(줄탁동시)"의 결과로 나타나는 어떤 하나의 완성,
그 완성이야 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줄(卒)하고 싶을 때, 탁(啄) 해 주실 분은
바로 그대 뿐입니다! *^.^*




♧편집 : 시나브로 핀 연꽃/詩人 拜